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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이상하다.

한때 그렇게 좋아하던 것을 어느 순간 완전히 잊고 살기도 한다.

나에게 당구가 그랬다.

열일곱 살부터 당구를 치기 시작했고, 한때는 당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찾아갈 정도로 당구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스물여섯 살에 대학에 들어가면서 당구를 거의 그만두었다.

그때는 당구 대신 다른 운동에 빠져 있었다.

야구도 좋아했고 테니스도 쳤고 골프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당구는 어느새 내 생활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무려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당구장에 들어선 날

내가 다시 당구장에 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경남당구연맹의 선수이면서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친구와 약속을 하고 당구장에 갔다.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에서 당구 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알던 당구와는 너무 달랐다.

사람들이 정말 잘 쳤다.

한두 명만 잘 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잘 쳤다.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구경했다.

'요즘 당구가 이렇게 달라졌나?'

2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었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냥 동네 당구장 손님들이 아니었다.

모두 경남당구연맹 소속 선수들이었다.

다음 날 그곳에서 연맹 월례대회가 열릴 예정이라 선수들이 미리 모여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내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 이해가 됐다.

내가 알던 당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잠시 후 친구가 도착했다.

친구는 기다리고 있던 나를 선수들에게 소개했다.

“형님 친구니까 인사드려.”

그리고 선수들에게 부탁했다.

“이 형님 당구 좀 많이 가르쳐 드려.”

그때부터 나는 그 당구장을 드나들면서 선수들에게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인연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선수들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름들이 있다.

강동궁, 허정한,  그리고 고인이 된 김경률 선수 등.

당시에는 대부분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었다.

그들과 어울리며 당구를 치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선수들은 아무하고나 게임을 해주지 않는다.

물론 나도 아무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현실은 그랬다.

그래서 예전의 내 방식이 다시 등장했다.

내 특기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저녁마다 선수들에게 밥도 사고 술도 사주면서 같이 어울렸다.

그렇게 매일 얼굴을 보고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당구를 칠 기회가 생겼다.

예전에 내가 열일곱 살 때 500점 고수를 따라다니며 커피와 담배를 사주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배우고 싶으면 어떻게든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선수들과 게임을 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계속 느꼈다.

그들의 폼은 나와 달랐다.

샷도 달랐다.

두께를 보는 것도 달랐고, 공을 보내는 속도도 달랐다.

당시의 나는 그들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부족했다.

한 번도 그 선수들을 이겨본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절반이나 제대로 따라갔을까 싶다.

“형님, 때려치우세요”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한 동생이 경기 도중 큰소리로 말했다.

“형님, 때려치우세요. 형님은 안 돼요.”

처음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동생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전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많이 지적하고 고치라고 이야기했던 친구였다.

자세를 고치라고 하고, 샷을 고치라고 하고,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줬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저걸 고쳐야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몸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고치려고 해도 내 팔과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당구는 머리로만 배워지는 운동이 아니구나.

내가 당구를 다시 제대로 시작한 이유

결국 그 말은 나에게 강한 자극이 됐다.

'정말 내가 안 되는 걸까?'

그 생각이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당구장을 직접 운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당구장을 하면 원하는 시간에 연습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밤늦게까지 연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구를 제대로 다시 배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당구장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그곳에서 처음 본 국제식 대대

그리고 그 당구장에서 내 눈을 크게 뜨게 만든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말로만 듣던 국제식 대대였다.

그 전까지 내가 주로 쳤던 것은 중대에서의 4구였다.

그런데 국제식 대대에서 3쿠션을 치는 선수들의 당구는 완전히 달랐다.

공도 달랐다.

그때 처음으로 61.5mm 3구 공을 직접 사용해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다.

당구를 오랫동안 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보니 '내가 당구를 좀 칩니다'라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차이가 컸다.

그래서 대대 한 대를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중대만 있는 당구장을 인수해서 운영하게 됐다.

그리고 오픈하면서 바로 국제식 대대 한 대를 들여놓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동호인들이 대대를 흔하게 치던 시절이 아니었다.

선수들이야 대대를 쳤지만, 일반 손님들은 여전히 중대에서 4구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 대대를 누가 치겠느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아무도 손님이 그 대대를 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건 내 연습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대는 내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됐다.

20년 만에 돌아온 당구는 나를 다시 공부하게 했다

다시 당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사기 시작했다.

당구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시스템이라는 것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느낀 것이 있다.

“책에 다 있구나.”

당구를 그저 감으로만 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리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구 시스템을 공부하고, 외우고, 직접 테이블에서 확인했다.

낮에는 당구장을 운영하고 밤에는 연습했다.

어떤 날은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0년의 공백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당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해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설명은 알아듣겠는데 직접 치려고 하면 안 됐다.

그런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보이기 시작했고,

어떤 두께로 맞혀야 하는지 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어떤 힘으로 쳐야 하는지도 조금씩 느껴졌다.

그때서야 예전에 선수들이 나에게 해줬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그 사람들이 이 말을 한 것이었구나.'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당구의 재미를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20년 전 당구를 좋아하던 열일곱 살 소년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그냥 공을 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왜 공이 그렇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제대로 치고 싶었다.

돌아보면 그 한마디가 나를 바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동생의 말이 고맙기도 하다.

“형님, 때려치우세요. 형님은 안 돼요.”

당시에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없었다면 내가 당구장을 운영하게 됐을지도 모르고, 대대를 한 대 들여놓고 밤새 연습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가끔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말을 들어야 변하는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다시 당구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알게 됐다.

당구는 오래 쳤다고 잘 치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제대로 배우고, 몸에 익힐 때 비로소 실력이 올라간다는 것을.

20년 만에 돌아간 그 당구장은 나에게 단순히 옛날 취미를 다시 찾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내 당구 인생이 두 번째로 시작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