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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당구를 친 세월을 생각해 보면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당구큐를 잡은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그때는 당구를 잘 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앞으로 50년 가까이 당구를 치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었다.
처음 당구장에 갔을 때는 공을 제대로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 쳤다. 혼자 쳐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당구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잘 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는데?'
어린 마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당구공이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당구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에는 당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찾아갔다. 당구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열일곱 살 소년에게 기본기를 알려준 사람
그때 당구장에서 나에게 기본기를 가르쳐 준 분이 있었다.
당구장 실장님이었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셨고 몸이 불편한 분이었다. 당시 그분의 점수는 150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에게 당구의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배운 기본기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다시 당구를 제대로 시작하면서 나 역시 기본기를 잘못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훨씬 나중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그저 당구가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력이 무섭게 늘었다.
처음 만난 실장님을 일주일 정도 만에 이겼고, 학교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250점 정도가 됐다. 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300점까지 올라갔다.
주위사람들은 나를 '당구 신동'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얼마나 빠른 성장인지도 몰랐다.
처음 당구를 시작한 학생이 어느 정도 속도로 실력이 늘어나는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저 재미있어서 쳤을 뿐이다.
당구가 너무 좋아서 부모님에게 혼났던 시절
문제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는 것이다.
당구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결국 부모님께 들켰다.
부모님은 정말 화가 많이 나셨다.
심지어 직접 당구장까지 찾아와 학생을 받아주면 신고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당구장에 가지 못하게 됐다.
그때는 그게 너무 억울했다.
'당구가 뭐가 그렇게 나쁜데?'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공부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당구장에 살다시피 하고 있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당구는 공부를 방해하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너무 재미있는 놀이였고, 잘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를 가장 빨리 성장시킨 사람은 500점 고수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당구장에는 500점 정도 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때 내게는 정말 대단한 고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당구장에 오면 나는 나름대로 작전을 썼다.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을 준비했다.
그리고 같이 당구를 쳐달라고 졸랐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집요하게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내 실력을 키우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지금도 당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당구를 빨리 배우고 싶으면 고수와 쳐야 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쳐야 한다.
물론 고수가 초보자나 중급자와 계속 당구를 쳐주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배우려는 사람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시의 나는 커피도 사주고, 담배도 사주고, 계속 같이 쳐달라고 졸랐다.
조금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는 고수의 공을 가까이서 계속 볼 수 있었다.
자세도 보고, 큐를 잡는 것도 보고, 공의 속도도 보고, 공을 보내는 방법도 봤다.
당시에는 내가 그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잘 치는 사람이 치는 것을 계속 보고 따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몸에 조금씩 쌓였다.
고수와 오래 치면 어느 순간 닮아간다
오랜 세월 당구를 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 배우느냐에 따라 당구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실력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과 계속 경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자세나 큐 속도, 스트로크, 겨냥하는 습관 등이 조금씩 닮아간다.
요즘 젊은 선수들을 보면 그게 더 잘 보인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어떤 선수에게 배웠는지 스타일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자세와 스트로크가 비슷하고, 공을 다루는 방법도 비슷하다.
그만큼 가까이서 좋은 선수의 당구를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17살 때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저 잘 치는 사람 옆에 붙어서 계속 쳤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좋은 공부였다.
그때는 몰랐던 사실
당시 나는 내가 당구의 기본기를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훗날 다시 당구를 시작하면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본기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다.
좋은 자세와 브릿지, 그립이 제대로 잡혀 있어야 당점과 두께를 정확하게 만들 수 있고, 원하는 샷도 구사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구를 처음 배우는 사람일수록 자세를 대충 배우면 안 된다.
처음에는 공이 들어가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잘못된 자세로도 우연히 공이 들어갈 수 있다.
그게 문제다.
당장은 공이 들어가니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때 가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고 하면 정말 어렵다.
내가 직접 그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은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50년 당구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돌이켜보면 내 당구 인생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열일곱 살 소년이 당구공 몇 개를 놓고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에 잠을 못 잤다.
다음 날 당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다시 찾아갔다.
잘 치는 사람을 보면 같이 쳐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잘 치고 싶어서 계속 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호기심과 재미가 내 인생에서 이렇게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50년 가까이 당구를 치면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당구는 머리로만 배우는 운동이 아니다.
머리는 아는데 몸이 모르는 경우가 있다.
좋은 자세도, 정확한 브릿지도, 올바른 스트로크도 결국 몸이 기억해야 한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내가 당구를 치면서 직접 겪었던 수많은 경험과 함께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열일곱 살의 나는 단지 당구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 천장에서 굴러가던 당구공은 단순한 공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