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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를 오래 치다 보면 잘한 경기보다 못한 경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특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경기라면 더욱 그렇다.
나에게는 2024년 전국체전이 그랬다.
그 대회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경남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이었고, 나에게도 마지막 출전이 될 대회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메달을 하나 따고 싶었다.
그동안 전국대회에 여러 번 참가했지만 가장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전국체전에서는 아직 메달이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훈련도 열심히 했다.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았다
2024년 전국체전은 경남에서 열렸다.
경기 장소도 김해체육관이었다.
나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했다.
예전에 처음 체육관 시합에 나갔을 때는 낯선 경기장 환경 때문에 평소 실력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당구대도 낯설고,
조명도 낯설고,
소리도 낯설고,
주변 공간도 낯설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한동안 체육관 시합만 하면 울렁증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사는 경남에서 열렸고, 경기장도 익숙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대진표 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는 정말 메달 한번 따보자.”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내 실력이 제대로 나왔다.
평소에 연습했던 것이 실제 경기에서도 어느 정도 이어졌다.
한 경기씩 치르면서 점점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결국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니까 어떻게든 메달을 하나 따고 싶었다.
특히 내 마음속에는 은메달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하나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경기는 정말 팽팽했다
준결승전은 쉽게 끝날 경기가 아니었다.
상대와 박빙으로 경기를 이어갔다.
누가 조금만 흔들려도 경기 흐름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끝까지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우위를 지키면서 마무리하면 되는 순간이 왔다.
딱 2점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상대방이 실수를 했다.
그것도 내가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순간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여기서 끝내면 된다.'
'그러면 은메달이다.'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드디어 메달을 따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바로 그 순간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좋은 기회가 오히려 독이 됐다
당구는 참 이상하다.
어려운 공을 칠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
“어려운 공이니까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마음으로 치니까 오히려 잘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좋은 기회가 왔을 때는 마음이 달라진다.
“이것만 끝내면 된다.”
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나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두 점을 쳐야 했기 때문에 힘을 정확하게 조절해서 좋은 포지션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평소에는 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심판의 한마디
공을 치는 순간이었다.
심판이 바로 파울을 선언했다.
“파울!”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바로 알았다.
공을 바꿔쳐서 오구 파울을 한 것이다.
그 순간의 허탈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에게는 두 점이 남아 있었고,
잘만 치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그 기회를 상대에게 넘겨버렸다.
더 황당한 것은 단순히 점수를 놓친 정도가 아니었다.
정확한 힘 조절로 상대방에게 좋은 포지션까지 만들어주는 결과가 됐다.
말 그대로 내 손으로 상대에게 좋은 공을 헌납한 셈이었다.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상대는 3점이 남아 있었다.
나는 좋은 기회를 놓쳤고,
상대에게 너무 좋은 공을 만들어주었다.
상대가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결국 상대는 마무리를 했고 나는 패했다.
경기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내가 직접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아쉽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준결승에서 그렇게 패하고 나니 마음이 무너졌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동메달 결정전까지 졌다.
결과는 4위.
메달은 없었다.
준결승에서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경기를 이겼더라면,
적어도 은메달은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구에는 “그랬더라면”이라는 말이 아무 소용이 없다.
공은 이미 지나갔다.
결과는 4위였다.
감독님도 놀라서 주저앉을 정도였다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감독님도 너무 황당했는지 거의 쓰러질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수많은 경기를 해봤고,
오랫동안 당구를 쳤고,
그런 상황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의 초보도 아니었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그래서 스포츠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실력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더 긴장할 수 있다
나는 그 경기를 통해 한 가지를 다시 배웠다.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
“이제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긴장이 들어간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동작도 갑자기 의식하게 된다.
힘 조절 하나하나에 신경 쓰게 되고,
오히려 너무 정확하게 하려고 하다가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상대방의 실수로 정말 좋은 기회가 왔고,
여기서 끝내면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마음이 달라졌던 것 같다.
당구에서는 마지막 공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경기를 많이 해보면 알게 된다.
당구에서는 마지막 공이 들어갈 때까지 경기에서 이긴 것이 아니다.
10점 앞서 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고,
상대가 아주 좋은 공을 놓쳤다고 해서 끝난 것도 아니다.
마지막 한 점을 남겨두고도 경기의 흐름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똑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내가 2024년 준결승에서 놓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먼저 결승선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래도 후회만 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
물론 너무 아쉬웠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공을 다시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결과는 4위였다.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메달 하나를 가져오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나는 그 메달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단순한 메달 하나가 아니었다.
50년 가까이 당구를 치면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것이었고,
어쩌면 나중에 가보처럼 물려주고 싶은 물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런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나는 2024년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2025년에는 경남에서 열린 장애인연맹회장배 전국대회에 참가했다.
경남에서 열리는 대회였기 때문에 한 번 더 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 우승으로 정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전국체전에서는 메달을 놓쳤지만,
마지막 전국대회에서는 우승이라는 결과를 남기게 됐다.
참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다.
마지막에 우승을 할 줄은 몰랐다
2024년 전국체전 4위의 아쉬움이 너무 컸기 때문에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런데 2025년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정리됐다.
“그래도 마지막에 우승 한번 하고 끝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국체전 메달의 아쉬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 준결승의 오구 파울을 생각하면 아깝다.
하지만 그것도 내 당구 인생의 한 부분이다.
잘한 경기만 기억에 남는다면 너무 재미없는 인생일 것이다.
실수하고,
지고,
아쉬워하고,
다시 일어나고,
마지막에는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도 스포츠다.
그 한 공이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
사람들은 흔히 우승한 경기를 가장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승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실수는 훨씬 오래 기억된다.
나는 지금도 그 준결승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다.
상대가 실수했던 장면,
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순간,
큐를 잡고 공을 쳤던 순간,
심판이 파울이라고 말했던 순간,
그리고 앞이 캄캄했던 순간.
그 모든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내가 그 대회에 정말 많은 것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
경기에서 실수했다고 너무 오래 자책할 필요는 없다.
물론 중요한 경기에서 큰 실수를 하면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나간 공은 다시 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이다.
나에게 그 실수는 이런 교훈을 남겼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한 공까지 평소와 똑같이 해야 한다.
상대가 실수했다고 흥분하지 말고,
내가 유리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더 차분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꼭 끝내야 한다.”
라는 생각보다
“평소 하던 대로 정확하게 치자.”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전국체전을 돌아보며
결국 나는 2024년 전국체전에서 4위를 했다.
메달은 없었다.
아직도 아쉽다.
특히 그 한 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다.
하지만 그 경기도 이제는 내 50년 당구 인생의 한 장면이 됐다.
좋았던 순간만 내 인생이 아니고,
실수했던 순간도 내 인생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025년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큐를 내려놓았으니,
어쩌면 당구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작은 위로를 하나 남겨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국체전 메달은 끝내 가져오지 못했지만,
나는 50년 가까이 당구를 쳤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경기를 했고,
수많은 공을 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평생 잊지 못할 단 한 번의 어처구니없는 오구 파울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도 있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웃을 수 없었다.
당구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공 하나가 사람을 울리고, 또 마지막 공 하나가 사람을 웃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