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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를 처음 배울 때는 오직 공만 보인다.
어떻게 하면 한 점이라도 더 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려운 공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수지가 어느 정도 올라가고 실제 경기를 많이 해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당구는 단순히 공을 잘 치는 것만으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도 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느끼기에는 특히 수지가 30점 정도를 넘어가면서부터 이런 변화가 생겼다.
공 하나보다 경기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지가 낮을 때는 눈앞의 공 하나에 집중한다.
공을 성공시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하지만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이제는 경기의 흐름을 보게 된다.
내가 지금 공격해야 하는지,
안전하게 가야 하는지,
상대가 어떤 리듬으로 치고 있는지,
지금 한 번의 공격이 실패했을 때 다음 상황은 어떻게 되는지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때부터 당구는 조금 다른 운동이 된다.
공 하나를 치는 것이 아니라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나에게는 경기 시작 전부터 지키는 루틴이 있었다
나는 경기를 할 때 나만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실력 못지않게 멘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경기 전에 마음을 정리하고,
큐를 잡고,
내가 평소 하던 방식대로 경기에 들어간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평소 연습할 때 하던 행동을 경기에서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긴장했을 때도 흔들림이 적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초반 기선제압이었다
내 경기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초반에 초집중한다.
처음부터 모든 힘을 다 써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초반에 경기의 흐름을 잡겠다는 것이다.
상대보다 먼저 공격적인 흐름을 만들고, 기선을 잡는다.
초반에 잘 풀리면 경기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해진다.
상대는 반대로 쫓아오는 입장이 된다.
당구는 점수 차이보다 심리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중요하다.
상대가 조급해지면 평소보다 실수가 나오기 쉽다.
그런데 초반에 기선을 잡지 못했다면?
모든 경기가 내가 원하는 대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먼저 좋은 흐름을 타기도 한다.
그럴 때 무리해서 따라가려고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내 방식은 조금 달랐다.
기선제압에 실패하면 철저하게 디펜스를 한다.
공격적으로 한 번에 뒤집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확실하지 않은 공이라면 위험을 줄이고 상대에게 어려운 공을 넘긴다.
그리고 상대의 리듬을 지켜본다.
상대의 리듬이 끊기는 순간을 기다린다
경기를 하다 보면 상대도 계속 잘 칠 수는 없다.
아무리 잘 치는 선수라도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 하나가 흔들리기도 하고,
한 번의 판단이 틀리기도 한다.
그 순간을 기다린다.
나는 상대의 리듬이 끊어지는 시점이 오면 다시 초집중해서 반격한다.
이것이 내가 경기할 때 사용했던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반격은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다
반격할 기회가 왔다고 해서 무조건 한 번에 뒤집으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은 반격이 성공했을 때 흐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한두 점이라도 제대로 가져오면 상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 내가 이 경기를 놓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상대의 플레이가 달라진다.
조금 급해지고,
평소 같으면 성공할 공에서 실수가 나오기도 한다.
그때부터 경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상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경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나는 상대의 실수가 한두 번 나왔다고 바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가 처음에는 침착하게 쳤는데,
어느 순간부터 급해지고,
평소보다 두께가 틀어지고,
힘 조절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는 오히려 내가 더 침착해야 한다.
내가 같이 흥분하면 안 된다.
상대가 흔들리는 순간일수록 내 루틴을 더 지켜야 한다.
이것이 경기 운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당구도 멘탈 싸움이다
사람들이 당구를 멘탈 스포츠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멘탈은 마음만 강하게 먹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본기,
충분한 연습,
경기 경험,
그리고 자신만의 루틴이 함께 있어야 한다.
기본기가 불안한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반복 연습을 통해 자신 있는 공이 많아지면 중요한 순간에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
나도 체육관에서 멘탈의 중요성을 배웠다
내가 처음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했을 때 이것을 아주 뼈저리게 경험했다.
당구장에서는 익숙하게 치던 공이 체육관에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당구대는 경기 전날 설치되어 있었고,
새 천이 깔려 있었다.
조명은 높은 천장에 달려 있었고,
공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그 공간 자체가 낯설었다.
나는 처음 그런 환경에서 경기를 해봤다.
그리고 평소 실력의 절반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이 서 있어도 어떻게 쳐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졌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날 나는 실력만으로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제대로 느꼈다.
체육관 울렁증을 극복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첫 경험 이후 체육관에서 경기를 할 때마다 긴장이 됐다.
한 번 생긴 울렁증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약 2년 정도가 지나서야 어느 정도 편해졌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경기도 훈련이라는 것이다.
경기에 많이 나가야 경기장이 익숙해지고,
긴장되는 상황도 경험해봐야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
연습장에서 공을 잘 치는 것과 경기장에서 같은 공을 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선수라면 큰 대회에도 나가봐야 한다
내가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 많이 느낀 것도 이것이다.
평소에는 아직 성장 중인 선수인데,
큰 대회에 한 번 참가하고 돌아오면 갑자기 한 단계 올라간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큰 대회에서는 평소 만나기 어려운 선수를 만나고,
긴장되는 상황도 겪고,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 경험 자체가 선수에게 큰 공부가 된다.
그래서 실력을 올리고 싶은 선수라면 작은 경기만 반복하기보다 가끔은 큰 대회에 나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력은 우승을 해보고 나서야 실감할 때도 있다
사람은 자기 실력을 스스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나도 그랬다.
예전에 나보다 훨씬 잘 치는 선수들을 보면 ‘넘사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선수들과 다시 만나 경기해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이제는 해볼 만한데?”
물론 그때도 쉽게 이겼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일방적인 차이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에야 내가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실력을 가장 확실하게 체감하는 순간은 역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다.
우승이나 입상을 하고 나면
“내가 정말 많이 올라왔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반대로 마지막까지 실수를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당구에는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나 역시 2024년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경기는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박빙으로 경기를 하고 있었고 마지막에 내가 우위를 지키면 되는 상황이었다.
상대방의 실수로 아주 좋은 기회까지 찾아왔다.
당시에는 그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끝내면 은메달이다.”
그 순간 너무 긴장했던 것 같다.
두 점을 쳐야 하니까 정확하게 힘을 조절해서 좋은 포지션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나왔다.
공을 바꿔쳐서 오구 파울을 한 것이다.
심판이 파울을 선언하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나도 믿기지 않았다.
결국 상대에게 너무 좋은 공을 헌납했고,
상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준결승에서 패했고,
충격이 너무 커서 동메달 결정전까지 졌다.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4위.
메달을 따고 싶었던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그 경기에서 내가 다시 배운 것
그 경기 이후 나는 당구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오히려 끝내기 직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제 거의 다 됐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경기에서 마지막 공을 칠 때까지 똑같은 마음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 운영도 결국 기본기에서 시작된다
경기 운영을 잘하려면 단순히 작전을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
실수했을 때 흔들리지 않고,
상대가 잘 칠 때 조급해하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는 집중해서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것도 연습에서 시작된다.
평소 충분히 연습한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믿을 수 있다.
50년 동안 당구를 치며 배운 경기 운영
나는 수지가 어느 정도 올라간 뒤부터 당구 경기가 단순히 공을 넣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초반에 흐름을 잡고,
안 되면 수비하고,
상대의 리듬이 끊길 때를 기다리고,
그때 다시 집중해서 반격한다.
그리고 내가 앞서기 시작하면 욕심내지 않고 내 루틴을 지킨다.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경기 운영 방법이다.
물론 모든 상대에게 똑같이 통하는 방법은 아니다.
당구는 상대에 따라 다르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자기만의 기본적인 운영법과 루틴을 갖고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구를 잘 치는 사람과 경기해보면 상대가 너무 강해서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의 흐름을 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분하게 해나가면 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당구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가 경기 전체를 바꾸기도 하고,
반대로 단 한 번의 집중이 경기 전체를 뒤집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당구를 오래 칠수록 더 어렵다고 느낀다.
공 하나를 잘 치는 것보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50년 가까이 당구를 치면서 배운 또 하나의 당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