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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를 오래 치다 보면 참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당구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공을 잘 치는데 시합장에만 가면 갑자기 공이 안 맞는다.
평소에는 어렵지 않게 치던 공인데도 두께가 흔들리고, 힘 조절도 안 되고, 머릿속까지 복잡해진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했다.
처음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첫 체육관 시합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소 당구장에서 경기를 많이 해봤다.
그래서 시합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체육관에 들어가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당구대부터 달랐다.
시합 전날 당구대를 설치했다.
새 천이 깔린 당구대였고, 평소 내가 치던 당구장과는 환경 자체가 달랐다.
조명도 달랐다.
체육관 천장이 높으니 조명이 당구대 바로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당구대 주변 공간도 넓었다.
공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달랐다.
평소 당구장에서 듣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문제는 실력만 달랐던 것이 아니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공을 못 쳤다.
아니, 못 친 정도가 아니었다.
내 평균 에버리지의 절반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이 서 있어도 어떻게 쳐야 할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소라면 당연히 판단할 수 있는 공인데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신이 없었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별로 없다.
어떻게 졌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그게 내가 처음 경험한 체육관 시합이었다.
상대방의 핸디가 더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더 이상했던 것은 평소 당구장에서는 나보다 핸디가 훨씬 낮은 선수였다는 점이다.
당시 장애인 당구대회에는 일반 당구장의 하우스 핸디 같은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다.
참가 선수들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했다.
평소 당구장에서라면 내가 훨씬 높은 핸디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실제 시합에서는 내가 졌다.
그것도 내가 가진 평소 실력의 절반도 못 보여주고 졌다.
그때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당구를 못 치는 건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구에는 “시합 경험”이라는 실력이 따로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이것을 많이 생각했다.
당구를 잘 치는 능력과 시합에서 잘 치는 능력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었다.
연습장에서 좋은 공을 치는 능력이 있어도,
실제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고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때까지 체육관이라는 환경에서 당구를 쳐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 몸이 그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당구대도 낯설고,
조명도 낯설고,
소리도 낯설고,
주변 공간도 낯설었다.
거기에 시합이라는 긴장감까지 더해졌다.
결국 머리와 몸이 동시에 흔들렸다.
공을 보고도 공이 안 보이는 느낌
그날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공은 분명 눈앞에 있다.
그런데 평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공을 어떻게 치지?”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생각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두께를 생각하고,
당점을 생각하고,
힘을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더 이상해진다.
팔에 힘도 들어간다.
큐를 자연스럽게 보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잘하던 공도 실수가 나온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자신감까지 떨어진다.
한 번 실수하고,
또 실수하고,
그러면 다음 공이 더 어려워진다.
이것이 경기의 무서운 점이다.
나는 체육관 울렁증이 오래갔다
처음에는 한 번 경험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체육관에서 경기를 할 때마다 긴장이 됐다.
당구장에서는 괜찮은데 시합장에만 가면 뭔가 달랐다.
이것을 극복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경우에는 대략 2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동안 여러 번 시합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처음부터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덜 긴장하게 되고,
조금씩 평소의 루틴을 찾게 되고,
조금씩 경기 중에도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체육관이 예전처럼 무섭지 않게 됐다.
결국 경험이 약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체육관 울렁증을 극복하는 데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많이 경험했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또 긴장하고,
또 경기하고,
또 실패하고,
그러면서 몸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계속 경험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도 그냥 당구대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부터 달라졌다.
공을 보는 눈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내 루틴도 조금씩 살아났다.
스트로크도 자연스러워졌다.
선수들에게 큰 대회 경험이 중요한 이유
이 경험은 나중에 젊은 선수들을 보면서도 다시 확인했다.
평소에는 아직 성장 중인 선수인데 큰 대회에 한 번 나갔다 온 뒤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큰 대회에서는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강한 선수와 경기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경기하고,
긴장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겪는다.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몸에 쌓인다.
그래서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처음보다 덜 긴장한다.
이것이 경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장에서 잘하는 것과 경기에서 잘하는 것은 다르다
당구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연습장에서 10개 중 8개를 성공한다고 해서 경기에서도 8개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에서는 마음이 달라진다.
점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상대방의 플레이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경기 자체를 연습해야 한다.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연습장에서 공을 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실전 경험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시합 전에 자신만의 루틴이 필요한 이유
나는 경기에서 자신만의 루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연습할 때 하던 행동을 경기에서도 최대한 그대로 하는 것이다.
큐를 잡는 순서도 같게 하고,
공을 확인하는 과정도 같게 하고,
샷을 준비하는 시간도 일정하게 한다.
왜냐하면 루틴이 있으면 긴장했을 때 생각해야 할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기마다 행동이 달라지면 긴장할 때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나는 초반에 특히 집중하는 편이었다.
처음부터 경기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초반에 잘 풀리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고 방어적으로 운영하면서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
이런 경기 운영 역시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졌다.
체육관 울렁증을 겪으면서 배운 것
첫 시합에서 크게 무너졌을 때는 상당히 창피했다.
평소보다 훨씬 못 친 것도 그렇고,
어떻게 졌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경기가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됐다.
그날의 실패 덕분에 나는 경기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실력만으로는 부족했다.
환경 적응, 경기 경험, 루틴, 멘탈이 모두 필요했다.
그것을 몸으로 배웠다.
시합에서 긴장하는 사람들에게
혹시 당구를 잘 치는데 시합만 나가면 실력이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랬다.
첫 체육관 경기에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나아졌다.
경기에 자주 나가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긴장되는 순간에도 평소의 자세와 스트로크를 유지하는 연습을 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한 번 시합에서 잘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음 경기에서 다시 긴장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또 경험하면 된다.
결국 몸이 환경까지 기억해야 한다
나는 당구에서 “몸이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공을 치는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장의 분위기도 몸이 알아야 한다.
조명의 밝기,
당구대의 느낌,
공이 부딪히는 소리,
관중이 있는 공간,
상대방을 마주하는 긴장감까지도 경험을 통해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지만 반복해서 경험하면 어느 순간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당구를 할 수 있다.
50년 가까이 당구를 치면서
돌이켜보면 당구를 하면서 배운 것은 공을 잘 치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실수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도 배웠고,
긴장하는 법도 배웠고,
긴장을 극복하는 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실력 외의 준비도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첫 체육관 시합에서 평소 실력의 절반도 못 치고 졌던 나도,
몇 년 뒤에는 다시 체육관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울렁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지만,
계속 경험하다 보니 어느 순간 체육관도 그냥 내가 당구를 치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됐다.
그때 나는 알았다.
시합에서 긴장하는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경험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당구를 잘 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연습만 하지 말고 가끔은 꼭 경기에 나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는 지고,
긴장하고,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이 결국 다음 경기의 실력이 된다.
나 역시 그렇게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한다.
당구에서 실전 경험도 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