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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당구에 빠진 밤 (50년 당구이야기의 시작)

당돌이 2026. 9. 13. 15:21

목차


    당구공이 준 첫 번째 밤샘

     

    지금까지 당구를 친 세월을 돌이켜보면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당구공을 잡은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그때는 당구를 잘 쳐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었고, 이 공 하나가 이후 50년 가까이 이어질 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저 재미있었다. 처음 당구장에 갔을 때는 공을 제대로 어떻게 치는지도 모르고 그냥 마음대로 쳤다. 혼자 쳐도 즐거웠다. 그런데 당구장을 둘러보니 잘 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큐를 잡는 손목의 각도, 공을 보내는 속도, 그리고 성공했을 때 짓는 표정까지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는데?' 어린 마음에는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는데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천장에서 당구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짧은 시간에 당구라는 놀이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던 모양이다. 다음 날에는 당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찾아갔다. 그때의 당구는 승부나 점수보다 그저 순수하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실장님에게 배운 첫 기본기

     

    그 시절 당구장에서 나에게 기본기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당구장 실장님이었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몸이 불편한 분이었다. 당시 그분의 점수는 150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에게 큐를 잡는 법, 공 앞에 서는 자세, 브릿지를 만드는 법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

     

    당구장 문을 열자마자 찾아가 밤늦게까지 큐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그저 알려주는 대로 따라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배운 기본기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다시 당구를 제대로 시작하면서 나 역시 기본기를 잘못 배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다. 열일곱 살의 나는 그저 당구가 좋았고, 배운 대로 하루 종일 큐를 잡고 연습했다.

     

    당구 신동 소리를 듣던 시절

     

    얼마 지나지 않아 실력이 무섭게 늘었다. 처음 만난 실장님을 일주일 정도 만에 이겼고, 학교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250점 정도가 됐다. 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300점까지 올라갔다. 동네에서는 나를 '당구 신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빠른 성장인지도 몰랐다. 처음 당구를 시작한 학생이 어느 정도 속도로 실력이 느는 것이 보통인지 비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있어서 쳤을 뿐인데 주변의 반응이 뜨거우니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커졌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당구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결국 부모님께 들켰다. 부모님은 정말 화가 많이 나셨고, 심지어 직접 당구장까지 찾아와 학생을 받아주면 신고하겠다고 하실 정도였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당구장에 가지 못하게 됐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 억울했다. '당구가 뭐가 그렇게 나쁜데?'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면 공부해야 할 고3 아들이 당구장에 살다시피 했으니 부모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500점 고수, 커피 한 잔의 부탁

     

    당구를 잘 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연습은 많이 하는데 실력이 잘 안 늘어요." 그럴 때 나는 한 가지를 먼저 물어본다. "고수하고 얼마나 쳐봤어요?" 당구 실력을 빨리 늘리고 싶다면 좋은 자세로 혼자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잘 치는 사람과 직접 부딪혀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당구를 처음 배울 때 그렇게 실력을 키웠다.

     

    내가 열일곱 살에 당구를 시작했을 때, 당구장에는 나보다 훨씬 잘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그 사람은 500점 정도를 치는 아주 잘 치는 사람이었다. 그때 내 눈에는 거의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칠 수 있을까 싶었다.

     

    문제는 고수가 초보자 하고 계속 당구를 쳐줄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 당시에는 당구장에서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을 주문해서 먹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그 고수가 당구장에 오면 나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갑을 시켜놓고 같이 쳐달라고 졸랐다. 지금 생각하면 꽤 집요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 사람과 같이 치고 싶었다.

     

    구경만 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한두 번 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붙어 다녔다. 잘 치는 사람이 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직접 그 사람과 공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렇게 같이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도 하게 된다. "이 공은 왜 이렇게 쳐요?" "여기서는 왜 힘을 이렇게 줘요?" "두께를 어디에 맞추는 거예요?" 그때는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잘하는 사람에게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혼자서만 연습할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공이 들어가면 잘 치는 것 같고, 어려운 공 하나 들어가면 실력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고수와 경기를 해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씩 보인다. 자세가 흔들리고, 스트로크가 일정하지 않고, 힘 조절이 안 되고, 공을 보내는 방법도 다르다.

     

    무엇보다 고수는 내가 어렵게 생각하는 공을 너무 쉽게 해결한다. 그걸 바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아직 멀었구나." 그런데 나는 이것이 오히려 좋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내 실력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자세

     

    당구를 오랫동안 치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와 오래 치느냐에 따라 당구 스타일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만 보다가 어느 순간 자세가 비슷해진다. 큐를 잡는 방법도 닮아가고, 스트로크의 속도도 비슷해지고, 공을 겨냥하는 습관도 닮는다. 나중에는 당구를 치는 전체적인 느낌까지 비슷해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 젊은 선수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어떤 선수에게 배웠는지 느낌이 오는 경우가 있다. 특정 선수의 자세와 스트로크를 닮았거나 공을 다루는 방식이 비슷하다. 그만큼 누구 옆에서 당구를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당구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고수를 괴롭혀라"라고 말하면 오해할 수도 있다. 정말 귀찮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괴롭힘은 배우려는 적극성이다. 고수와 칠 기회가 생기면 피하지 말고 붙어야 한다. 게임에서 져도 좋다. 오히려 많이 져야 한다.

     

    지금은 내가 반대편에 서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나도 당구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같이 쳐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약한 사람들과도 같이 쳐주려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배우고 싶어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잘 치는 사람을 붙잡기 위해 커피를 사고 담배를 사고 계속 같이 쳐달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히 고수에게 게임 한 판 얻어 친 것이 아니었다. 고수의 당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산 것이었다.

     

    혼자 연습하면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반복하기 쉽다. 하지만 고수와 치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보게 된다. 내가 "이 공은 안 되는 공"이라고 생각했던 공을 고수가 너무 쉽게 해결하는 순간도 있다. 그때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충격이 공부가 된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치지?" 그 질문 하나가 새로운 연습의 시작이 된다.

     

    배움은 결국 가까이 붙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 당구를 배우고 있는 분들에게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혼자서만 연습하지 마라. 잘 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한 번이라도 같이 쳐봐라. 그리고 가능하면 자주 쳐봐라. 처음에는 계속 질 수도 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패배 속에서 내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가 보인다.

     

    돌이켜보면 열일곱 살의 내가 했던 가장 현명한 선택 중 하나는 잘 치는 사람 옆에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500점이라는 숫자가 넘사벽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격차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혼자 방 안에서 이론만 파고들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당구를 잘 치고 싶다면 좋은 책도 필요하고 연습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 기억했으면 좋겠다. 잘 치는 사람의 당구를 직접 보고, 직접 같이 쳐라. 당구는 책만 보고 배우는 운동이 아니다. 사람에게 배우고, 눈으로 배우고, 몸으로 배우는 운동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 배움을 되돌려주는 날이 올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은 예전에 받았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입장이 되어 있고, 그것이 당구를 오래 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해가 된다. 당시의 나에게 당구는 공부를 방해하는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 재미있는 놀이였고 잘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때는 몰랐던 기본기의 빈틈

     

    그런데 그때는 몰랐던 것이 있다. 나는 내가 기본기를 잘 배웠다고 믿고 있었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훗날 다시 당구를 시작하면서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세도 다시 고쳐야 했고, 스트로크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공이 들어가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자세로도 우연히 공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당장은 공이 들어가니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때 가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고 하면 정말 어렵다. 나는 훗날 그 과정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지금은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50년,  당구이야기의 시작

     

    돌이켜보면 내 당구 인생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열일곱 살 소년이 당구공 몇 개를 놓고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밤에 잠을 못 잤고, 다음 날 당구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다시 찾아갔다. 잘 치는 사람을 보면 커피와 담배까지 준비해 가며 같이 쳐달라고 졸랐고, 그렇게 실력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당시에는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만 보고 내가 기본기까지 잘 갖췄다고 착각했지만, 그것은 훗날 다시 당구를 배우면서 고쳐야 했던 부분이었다. 그 작은 호기심과 밤샘의 설렘, 그리고 고수를 향한 집요한 따라붙기가 이후 50년 가까이 이어지는 당구 인생의 첫걸음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당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를 느끼는 그 마음을 소중히 하되 기본기만큼은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